[가디언] 산티 카솔라 장문 인터뷰 (감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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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산티 카솔라 장문 인터뷰 (감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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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2 급식1인분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7회 작성일 18-09-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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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8733106780.jpg [가디언] 산티 카솔라 장문 인터뷰 (감동주의)

어느날, 당신은 의학 교과서에서 카솔라에 관한 얘기를 읽고 있을 수도 있다.


“의사선생님과 물리치료사분들도 저처럼 심한 케이스는 처음 봤다 하셨어요.


실제로 제 담당의사였던 미켈 산체스가 절 사례 연구 중 하나로 넣는다고도 들었구요.”



무릎, 발, 발목에 부상이 있었고 확실한 방도를 찾지못한 채 10번의 수술 동안 끝 없는 좌절이 이어졌다.


그의 커리어와 다리마저도 위협하며, 피부는 자꾸 벌어지고 그 사이로 힘줄의 10cm 부분에 감염이 진행됐다.


아르센 벵거는 자신의 감독기간 동안 본 최악의 부상이라 말했고, 의사 또한 정원을 거닐 수 있다면 그에 만족하라고 말했다.



“전 축구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카솔라가 말했다.


그런 그가 무려 636일동안 축구를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다시는 뛸 수 없을 것이라 했고, 카솔라 자신도 집과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멍하니 누워 포기하기를 생각했던 나날들도 많았다.



“가족들에게 ‘난 끝난 것 같아. 내일 물리치료사분께 가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 할거야.’라고 한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막 트레이닝을 마친 채, 이렇게 그가 앉아있다.


실제로 이번 시즌 카솔라는 비야레알에서의 3경기를 모두 출전했다.



“토요일에 내가 경기를 뛴다는 생각을 하면, 내 자신을 꼬집어보기도 해요.


정말 매순간,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Santi-Cazorla-Arsenal.jpg [가디언] 산티 카솔라 장문 인터뷰 (감동주의)

카솔라는 팔뚝에서 피부를 잘라내 이식을 해야 했고 팔에 새겨져 있던 딸의 이름 문신은 현재 그의 발 뒷꿈치에 자리하고 있다.

 
w11.jpg [가디언] 산티 카솔라 장문 인터뷰 (감동주의)
 

이 모든 것은 2013년 9월, 칠레와의 친선전에서 입었던 조그만 타격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단지 이게 부상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며, 5년동안 이와 비슷한 요소들의 축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발목의 뼈에 금이 갔고, 2015년 11월엔 무릎인대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2016년 10월 루도고레츠를 상대하기까지 점점 커지는 통증을 참으며 줄곧 경기에 임했다.



“하프타임에 한기가 돌면서 정말 죽을만큼 아팠어요.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정말 큰 손상을 입었고, 고통은 더 심해졌죠.”


“그 날 밤, 저는 울었어요.이 모든 부상이 너무 많이 와버린 것 같았거든요.


전 모든 걸 멈춰야했고, 그때부터 진짜 문제들이 시작됐어요.”


“큰 부상은 아닙니다.” 라고 그때 벵거는 말했지만, 이후로 아스날에서 뛰는 카솔라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정작 그 안에서 뭐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못 본 거예요.


-박테리아가 제 몸을 갉아먹고 있었죠.”


“수술실에서 막 회복하고 나왔는데, 제 상처가 벌어져 있었어요.


자전거를 타려고하면 꿰맨 실 조각들이 튀어나오곤 했어요. 자꾸 벌어지는 상처였기 때문에 박테리아나 다른 벌레들이 들어갈 위험이 있었죠.


밤에는 상처에서 노란 진물이 흘러나왔어요. 상처가 벌어질때마다 꿰매고, 다시 벌어지고, 또 꿰매고의 반복이었어요.


갈수록 상처에서 더 많은 진물이 흘러나왔구요.”



“피부이식수술은 해줬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찾아내지 못한 거예요.


그 곳에 계속 있었더라면, 어떤 박테리아가 내 몸에 잠식해 있었는지 절대 알아내지 못했을거라 생각해요.”


“병원에선 저에게 ‘축구를 다시 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아라. 


아들이랑 다시 놀아줄 수 있을지, 혹은 산책을 다시 할 수 있을지의 여부와같이 정상적인 삶을 되찾아오는 데만 집중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한 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때쯤 스페인에 갈 결정을 이미 내렸었거든요. 그리고 거기서 완전히 다른 얘기를 듣게 돼요”


“그때쯤 저는 완전히 지쳐있었어요. 2-3달 내내 줄곧 수술만 받았거든요.”


“비토리아에 갔고, 거기서 박테리아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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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이 제 힘줄을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모르겠다 말하셨어요.


그리고 말하길, 힘줄을 찾을때까지 상처 부위를 열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죠.”


“계속해서 더,더,더,더,더 열어야한다 했고, 끝내 힘줄을 찾았을땐 이미 힘줄의 10cm가량이 사라져있던 상태였어요.”


“제가 운이 좋다고 말했어요. 더 늦게 왔으면 훨씬 더 많이 사라져있을 거라고 말하시면서요.”


“그러고나서 힘줄을 재건하려니까, 그때서야 뼈도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 보이는거예요.


심지어 손가락을 놓을 수도 있었죠, 뼈가 마치 플라스터신(어린이용 점토)같았어요.”


“그들(영국에 있는 의사들)이 ‘그 박테리아를 알고있다’고 말하며 항생제를 보내줬어요.


하지만 항생제를 준다는 말이 어느 특정한 벌레에 사용가능한 ‘정확한’ 항생제는 아니었어요.


‘어떤’ 박테리아가 힘줄을 갉아먹고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죠.”



카솔라는 대부분 웃으며 이야기를했지만, 분명 그에게도 화가 났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 상황까지 오기까지 이 모든 게 누구 탓인가,와 같은 그런 것 말이다.



“박테리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그들은(이전 병원) 책임을 지거나 사과를 하지도 않았어요.


제 생각에는 발견되지 않은 박테리아는 그저 운이 조금 안 좋다 정도로 치부하고, 옳은 일을 했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구요.”



또한 결국, 다리절단까지 해야하는 상황까지 왔을 수도 있다. 진짜 그럴 행동을 취할 생각을 해봤는지?


“제 가족이 먼저 그 얘기를 꺼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럴 가치가 없다며 만류했어요.


약간 답답했어요. 왜냐면 첫날 제 상태를 봤더라면 다리 절단 여부는 사소한 걸로 느껴졌을 정도였거든요.


하지만 그런 것에 관해 떠드는 건 귀찮고, 또 싸우는 것도 소용 없다 생각했어요.”


w33.jpg [가디언] 산티 카솔라 장문 인터뷰 (감동주의)

“아르센은 절 언제나 지지해주셨던 분이에요.


첫번째 수술을 하기 전, 제 계약을 연장시켜주기까지했죠.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어요."


"그는 저를 부르고 ‘산티, 계약 연장하려는데, 계약서 여기 있다. 그리고 마음 편히 먹고 수술 잘하고오렴’이라고 하셨죠.


아르센의 이 말이 두려움 없이 재활에 집중하는데 도움을 줬어요."


"평생 감사함을 잊지 못할 거예요.”



이 모든 걸 과거로 돌려놓아 칠레와 친선전이 있던 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지금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해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 자신을 탓하지는 않아요.


물론 20분쯤 부상을 당하고, 그 경기에서 풀타임을 뛰었기에 가끔 생각은해요.


‘좀만 더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나 자신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부상이 이렇게 심해지진 않았을텐데..’ , ‘교체시켜달라’고 말하기만 했다면...”



“사람들은 제가 더 똑똑하게 행동했어야한다 말하지만, 전 그렇게 하진 않을 거예요.


아스날 또한 ‘왜 서브로 내려가지 않았느냐’ 물었지만, 결국 이런 제 결정을 존중해줬어요.”



“뼈에 금이 간 걸 발견했을때, 저는 당분간 경기에 뛰지 않을 것을 제안받았지만, 그냥 한대 걷어차인 것뿐인데요, 붕대 감아주세요. 라고 말하고 다음주 또 경기를 뛰었죠.”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지만,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경기할지 결정한 건 결국 나 자신이에요.


몇몇 사람들을 탓할 순 있지만 결국 책임은 저에게 있죠. 저는 더 빨리 스페인에 갔어야했어요.”



카솔라의 힘줄 재건을 위해 햄스트링 부분의 반힘줄근 일부를 떼어와 사용했고, 발뒤꿈치에는 금속판을 주입했다.


“런던에서는 거의 결정지은 듯이 내가 다시는 뛸 수 없을 것이라 얘기했지만, 스페인에서는 ‘산티, 분명 상황은 좋지 않아.하지만 힘들어도 우리는 계속 싸워나갈거야.’라고 했죠.”


카솔라는 아내와 두 아이를 런던에 남겨놓은 채, 치료를 위해 비토리아로 재활을 위해 살라망크로 향했다. (무척 외롭고 따분한 생활이었다.)


그곳에서의 (치료)진행은 느렸고, 더 많은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힘줄이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다시 붙여야했던 날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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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모든 걸 포기할 준비를 할 때도 있었어요. 그 어떤 발전도 보이지 않을때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의료직원에게 그렇게 말을 하면 ‘다시 피치에서 뛰고 싶어요?’라고 물어요. 그럼 당연히 뛰고 싶다고 대답하죠.


‘좋아요. 그럼 된거네요. 오늘 빨리 운동하러갑시다. 그런 다음에 내일 어떻게 될지 보자구요.’


그렇게 점점 조그만 발전들은 보기 시작했어요.



어느날은 직원이 저를 피치로 데리고갔는데, 그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니 정말 머릿속이 너무 말끔해지는거예요.


그렇게 호텔에 함박웃음을 짓고 도착한 날도 있었어요.


치료사분들이 똑똑했어요, 저에게 적절한 ‘속임수’를 썼거든요.


어떤 날은 ‘축구공’을 주기도 했어요.. 세상에! 그게 절 조금이나마 다시 축구선수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주더라구요.


그렇게 잘 놀고나면 치료사분들이 ‘내일은 더 오래 공을 가지고 놀거예요!’라고 했죠.


그런 작은 속임수들과 함께,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게 조금은 더 가치있게 느껴졌어요.”



“가족에게 전화가 오면 ‘나 오늘 공을 만졌어!’라고 자랑했어요.


‘어땠어?’라고 묻길래 ‘조금 아팠지만, 내가 공을 만졌다니까..!’라고 반복했죠.”



런던에서 오비에도로 옮기며, 딸 인디아는 5살, 아들 엔조는 8살이 되었다.


“제 아이들은 1년동안 학교를 세번이나 바꿨어요.


어느날은 집에 도착했는데 그 다음날, 아이들이 ‘아빠, 또 떠나시는거죠? 맞죠?’하는거예요.


이런 상황들이 익숙해졌다는 게 제 마음을 후벼팠지만, 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랬답니다. 제 아들 축구솜씨는 정말 미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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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조는 등에 ‘Papi 19’가 적힌 비야레알 노란색킷을 입고있다.


그의 아버지는 잠시동안 데포르티보 유스팀과 훈련했지만, 여름 즈음 팀을 나왔고


프리시즌 비야레얄에 합류한 후, 드디어 계약을 체결했다.



카솔라는 연기가 가득 찬 통에서 마술사가 그를 극적으로 등장시키는 입단식을 회상하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킥킥대며 웃었다.


“숨어있었어요. 45분 동안 그 작은 공간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입단식에서 카솔라는 “다들 제 입단식 정말 멋진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토요일엔 못 뛸 것 같아요”라고 말했지만,


그는 첫 경기부터 출전했고, 지금까지 그러하고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정신적인 두려움, 약한 발목, 몸의 불균형 등등 고통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진 않아요.전 긍정적인 사람이거든요.”



비야레알에서 1년+1년 연장 옵션에 사인했지만, 아직 그에게는 향후 아무런 계획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 목표는 그저 다음 경기를 뛰는거예요.그러고나면 또 다음 경기를 무사히 마치는게 목표구요.”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경기를 뛰는 것, 그게 그의 목표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이제까지 카솔라는 비야레알 최고의 선수이다.



이것이 과연 아스날과도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아니요. 그들은 그러길 원하지 않았어요.”


“아스날은 저에게 정말 정말 잘해주고 솔직했어요.


제 생각은 지금 여기서 하고있는 걸 아스날에서 이루는 것이었어요.


일단 나와 계약을 맺고싶어하는 팀이 있으면 제 몸상태를 보여야한다 생각했죠 : 아무것도 안 보고 계약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프리시즌을 아스날과 보내고 그들이 절 보고 결정할 수 있게 했어요.


아스날은 최종 스쿼드를 결정짓기까지 절 기다려줄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절 어떤 방식으로라도 돕겠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이해했고, 전적으로 그 의견을 존중해요. 아스날에게도 영원히 감사할 것입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절 사랑했고, 아스날과는 언제까지나 특별한 유대감을 지니고 있을 거예요, 너무 많은 애정이 깃들어있죠.


에미레이츠에서 경기를 뛰며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지 못한 건 제 가슴속에 가시가 되어 남아있어요.


떠나게 된다면, 팬들 앞에서 직접 인사를 하고 싶었거든요.”



2016년 10월 루도고레츠전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아, 유로파리그 준결승전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4월 에미레이츠에서 ‘훈련’을 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가 한 요청사항엔 에미레이츠 경기장에서의 향수가 서려있었다.



“훈련을 해도 되냐고 제가 직접 물어봤어요. 다시는 그곳에서 뛸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별 건 없었어요. 그저 운동장 4바퀴를 돌고 약간의 드리블만 친 게 다죠.


하지만 다시 그 경기장, 그 잔디에 닿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팬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이었어요.”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18/sep/07/santi-cazorla-villarreal-injury-arsenal-interview-sid-lowe

http://cafe.daum.net/ASMONACOFC/gAUc/1368665


출처-팸코 산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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