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축구계에 일어났던 참사들(上)

본문 바로가기

영군의 No To Racism

영군의 NTR 잊지 말아야 할 축구계에 일어났던 참사들(上)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414회 작성일 18-11-02 22:33
월드컵톡

본문

※'영군의 No To Racism'은 차별없는 글을 위해 만들어진 주제입니다

독자분들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차별 없는 글을 쓰며 소통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주말 레스터와 웨스트햄의 EPL 10R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레스터 시티가 'EPL 우승'이라는 동화를 써 내려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구단주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씨가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었다


사고 후 들려오던 루머와는 다르게 그의 가족과 레스터 시티의 감독인 '클로드 퓌엘'은 헬기에 탑승하지 않아 신변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구단주의 죽음은 레스터 시티의 팬뿐만 아니라 축구계에 큰 슬픔을 가져왔다


필자 역시 비차이 구단주가 축구에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소식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가 팬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금 알고 있던 축구계의 안타까운 사건들이 생각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축구계에 큰 슬픔을 불러온 참사들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수페르가의 비극 (1949년 5월 4일)


3660883679_afrNtZ6y_19cd3bacb23433afb0c453c7f506f1fa143a1776.jpg


수페르가의 비극은 축구계에 처음 일어난 사고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프로 팀인 '토리노FC'가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를 리스본에서 치른 이후 이탈리아로 귀국하다가 기장이 번개로 인해 시야에 방해를 받아 시야 확보를 위해 비행기를 하강하다가 '수페르가 언덕' 위의 성당을 보지 못하고 충돌하면서 다수의 사상자를 만들었다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였고 탑승객에는 18인의 토리노FC 선수단과 5명의 감독을 포함한 스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토리노는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당시 토리노의 선수진은 가히 대단했는데 선수단 대부분이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발탁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선수들이 모두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유벤투스에게 토리노의 대표 클럽이라는 수식어를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뮌헨 비행기 참사 (1958년 2월 6일)


3660883679_u9kTmwlg_b9ca26262aae158c140f10c474a53f001b839cb2.jpg


시작부터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필자는 리버풀의 열렬한 팬으로 라이벌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가대표가 아닌 프로 선수로써 박지성 선수와 명장 퍼거슨 前 감독에 호감을 가진다거나 존경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참사를 통해 필자는 맨유의 전설적인 인물인 '맷 버즈비' 감독을 존경하게 되었다


'뮌헨 비행기 참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겪은 비운의 사건이다

당시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경기를 치루기 위해 소련에 가서 즈베즈다와 경기를 치룬 후 잉글랜드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경유지인 뮌헨 공항에서 이륙을 시도하였는데 녹은 슬러쉬 때문에 정상적인 이륙을 하지 못했고 민가로 추락해 트럭과 충돌하며 기체가 폭발을 일으키며 전복되었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 맨유 선수 8명과 구단 스탭, 취재 기자를 포함해서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3660883679_uvLagAZG_53ecb08759aa3dfbe74438e7345b890a92fc5d4a.jpg


이 사건 속을 겪고도 살아남은 선수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맨유의 레전드, '버즈비의 아이들' 중 하나인 '바비 찰튼'도 있었다

다행히도 바비 찰튼은 이 사건을 겪고도 커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가 되었지만 살아 남은 선수 중 몇몇은 충격으로 인해 혹은 심한 부상을 입어 선수 생활을 일찍이 마감해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맨유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지만 어쩌면 더 오래갈 수도 있던 이 암흑기를 끝낸 인물이 바로 '맷 버즈비' 감독이다


맷 버즈비 감독 역시 뮌헨 참사에서 살아남은 인물인데 거의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위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눈을 떴고 눈을 뜨고 나서 본인의 오른팔인 '지미 머피'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계속 깃발이 날리게 해주게 지미, 내가 돌아갈 때까지 맨유가 무너지지 않게 해줘"


​그러고나서 감독직에 복귀한 버즈비는 데니스 로와 조지 베스트를 영입한 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삼각편대를 만들어내며 뮌헨 참사 10년 후인 1968년, 유러피언 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3660883679_dVty1mnk_9ecf562377515dedf8c746b0b6b32a161671745c.jpg



​헤이젤 참사 (1985년 5월 29일)


3660883679_7ROIh6Pf_d0e5669aaedca0eded1593a6a69d52dba626cf41.jpg


리버풀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이자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이 두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헤이젤 참사'이다

헤이젤 참사는 1985년에 유러피언 컵 결승이 펼쳐지던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스타드 루아 보두앵(現 벨기에 국가대표팀 홈구장)'에서 일어났다


당시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결승전 경기가 열렸는데 경기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팬들간의 험한 말이 오고 가다가 흥분한 리버풀의 팬들이 울타리와 경찰들을 넘어 유벤투스 팬들을 향해 돌진했고 유벤투스 팬들도 이에 맞섰지만 리버풀 팬들이 더 밀어붙이자 유벤투스 팬들은 밀리다가 낙후된 경기장 시설이 무게를 견뎌내지 못해 외각 콘크리트가 무너지면서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리버풀은 7년 동안 유럽 클럽 대항전 출전 불가 징계를 받았고 잉글랜드 구단들은 5년 동안 유럽 클럽 대항전 출전 불가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징계는 잉글랜드 축구의 암흑기를 가져왔다


헤이젤 참사의 주범인(정확히는 서포터가 저지른 일이지만) 리버풀은 이 사건을 잊지않고 오늘날 까지도 기리고 있다


당시 있었던 경기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큰 사고가 있었음에도 경기는 진행이 되었고

유벤투스의 미셸 플라티니의 PK 득점이 결승골이 되면서 1:0으로 유벤투스가 창단 후 첫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下)편에서 계속...


※여러분의 반응을 기다립니다

읽어주시고 궁금한 점이나 의견을 달아주시면 정성껏 답글을 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군의 No To Racism'은 다음주에 찾아오겠습니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댓글목록

Total 7건 1 페이지
영군의 No To Racism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 추천 / 비추천 날짜
공지 [공지]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 / 8 / 0 10-02
6 [영군의 NTR]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 / 6 / 0 11-09
열람중 [영군의 NTR]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5 / 6 / 0 11-02
4 [영군의 NTR]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5 / 5 / 1 10-26
3 [영군의 NTR]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1 / 7 / 1 10-18
2 [영군의 NTR]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9 / 11 / 3 10-09
1 [영군의 NTR] profile_image 영군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 / 7 / 0 10-04
게시물 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월톡 이슈 더보기


그누보드5
Copyright © worldcup.co.kr All rights reserved.